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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문제는 인문학이다!

대한국민 2007. 1. 30. 03:12

 

 

 

 

 

 ■ 문제는 인문학이다


  입어도 허전하고, 가져도 허전하고, 먹어도 배고프고, 해도 해도 뭔가 부족하다. 뱃속에 거지가 들은 것처럼 먹어도 먹어도 뭔가 2%가 허전한 것이다. 그렇게 많이 예술품을 소비하고 향유하는데 왜 그렇게 허전한 걸까. 꼭 먹어야 할 것들을 먹지 않기 때문 아닐까.


  꼭 먹어야 할 영양분은 무엇인가. 정체성이고 자존심이고 삶에 대한 철학이다. 그것은 인문학으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고 험하다. 시간도 없다. 싸이질 블로그질도 해야하고, 친구에게 휴대폰 문자도 보내야 한다. 그러다 오랜만에 마음잡고 책을 펼치면 도무지 이해가 안 돼 죽을 지경이다. 된장녀(남)들 중 많은 수가 본격문학 작가 10명의 이름도 대지 못한다. 아는 작품 수 역시 그렇다.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책을 펼치고 채 30초를 버티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한다. 단어 하나하나를 생각하면서 읽어나가고 힘들게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는 책읽기는 원시적인 문화생활처럼 느껴진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걸까. 필자는 가장 큰 원인으로 교육제도를 꼽겠다.

 

  우리의 학교는 정작 필요한 것은 외면하고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가르친다. 첨단교육이라고 하지만 교육제도 속에 들어간 교육은 이미 첨단이 아니다.

  산업구조는 끝없이 바뀐다. 지금 학생들이 배우는 지식 30-40%도 활용하지 못한다. 그것을 위해 유치원부터 과외수업이 시작된다. 엄청난 투자다. 영어과외, 피아노 학원, 입시학원…… 보통 대학입학까지 5천만 원에서 1억 원 가까이 투자를 한다. 과장이 아니다. 계산해보라. 중산층 이상은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

 

   이미 청년실업이 사회문제화 되었다. 산업구조가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지구가 거꾸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앞으로 구직난은 더 극심해질 것이다. 점점 더 일개미들이 필요없는 시대가 되고 있다. 이미 3D업종 산업은 한국에서 거의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남은 업체도 외국인노동자들이 기계를 돌리고 있지 않은가. 바야흐로 어느 정치가의 말처럼 극단적으로 천재 10명이 나라를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취업은 점점 더 힘들어질 것이다. 기껏해야 20% 정도? 나머지들은 무엇을 하며 살까. 그 전공지식들은 어디에 팔까?

 

  내가 청년이던 1980년대에는 대졸자가 15%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들 대부분이 사무직으로 취직되었지만 그때도 전공을 살린 경우는 드물었다. 그런데도 무엇 하려고 그 골치 아픈 전공을 공부한 걸까. 내가 보건대 한국의 대학제도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게다가 지금은 1980년대도 아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5년 현재 여성의 대학진학률은 80.8% 남성은 83.3%에 달하고 있다. 이는 엄청난 국가적 낭비다.
  그렇다고 공부시키지 말자고? 그렇다. 미친 소리 같지만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인문학만 철저히 가르치고 필요 없는 공부는 더 이상 시키지 말자고.


  1960∼70년대 아이들의 최대 오락은 만화였다. 대부분 만화를 좋아했다. 밥도 안 먹고 만화가게에서 살았다. 만화책을 한 보따리씩 싸들고 친구들 집을 몰려다녔다. 부모들, 학교 선생들 쫓아다니며 말렸다. 얻어맞기도 했고 벌을 서기도 했다. 만화는 '호환,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서운, 뿌리뽑아야 할 악의 씨였다.
  그런데 지금 만화시장과 애니메이션 시장은 엄청나다. 우리나라 만화산업 규모는 1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또한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세계 제1의 하청생산국으로 세계 애니메이션의 80%가 우리나라에서 그려지고 있다. 또한 성공한 인문학서적들은 새롭게 만화버전을 속속들이 내놓고 있다. 요컨대 만화업계에서 먹고사는 사람들 수가 (통계가 없어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상당수에 달한다는 것이다. 만화는 디지털 시대 콘텐츠의 꽃으로, 장래도 밝다. 뒤늦게 몇 군데 대학에 만화학과가 생기고 애니메이션고등학교도 생겼다. 교육의 악이었던 만화가 교육 시스템 속으로 진입해버린 것이다.

 

  1970년대 후반 이 땅에 처음 전자오락이 들어왔다. 내 기억에 의하면 최초 오락실에 설치된 게임기들은 벽돌깨기와 자동차경주, 스페이스인베이더였다. 이내 거리마다 골목마다 오락실이 점령했다. '스페이스인베이더'의 상위버전이라 할 수 있는 '갤러그'의 열풍은 대단했다. 게임사적으로 보면 1980년대는 갤러그의 천하통일 시대였다. 이후 '제비우스' '1942' '너구리' '보글보글; '테트리스' 그리고 '스트리트파이터'까지… 1980∼90년대 아이들은 게임에 미쳤다. 밥도 안 먹고 게임기에 매달렸다. 엄마들은 저녁밥을 짓고 아이들 찾아 오락실을 헤매는 게 일이었다. 부모들, 학교 선생들 쫓아다니며 말렸다. 전자오락은 만화 이후 새롭게 출현한 '호환, 마마, 전쟁'보다 더 무서운, 뿌리뽑아야 할 악의 씨였다.

 

  그런데 또한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지금 게임시장이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 해마다 30% 수준의 꾸준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2005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게임산업 규모는 8조600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며 먹고사는 사람들 수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온라인게임 수출로 외화도 많이 벌어들이고 있다. PC게임, 비디오게임, 아케이드게임, 온라인 게임, 모바일게임 등등 게임시장은 넓고도 넓다. 정부차원에서 지원 육성을 하기도 한다. 많은 대학에 게임학과가 신설되고, 게임학원들도 성업중이다. 교육의 악이었던 전자오락이 교육 시스템 속으로 진입해버린 것이다.


  만화시장과 게임시장을 이끄는 사람들은 누굴까? 바로 10년 전, 그리고 2∼30년 전 학교선생들과 부모 몰래 욕먹어가며 불량청소년들의 온상인 만화가게와 전자오락실을 다녔던 철부지 아이들이다.
  기성세대는 이렇게 늦다. 왜 긍정적인 내용의 만화, 긍정적인 게임으로 방향을 틀어주지 못하고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고 금지하는 일에만 급급했을까. 모든 것이 이전 세대의 한계를 깨면서 발전하는 법인데, 교육계는 늘 어느 분야보다 한 걸음 더 늦다. 완벽하게 검증된 '안전한' 것만 커리큘럼으로 흡수한다.

 

  결국 못 써먹을 낡은 전공공부에 왜 그렇게 낭비를 해야 하는가.  인문학을 철저히 교육시키고 정말 활용할 수 있는 전공 공부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면 되지 않는가. 그러면 나머지는, 기초지식만 있으면 자기들 스스로 인생의 노하우를 찾아간다. 항상 미래는 아이들의 것이다. 기성세대는 기초지식과 생각하는 기술만 제대로 가르치면 된다.

 

  법대 나오면 다 법관이나 변호사가 되고 사범대 나오면 다 교사가 되고 정치학과 나오면 다 정치가가 되니 나머지는 전공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경쟁은 필요하다. 만 명의 둔재가 뒤따라 달려줘야 10명의 천재도 존재할 수 있는 법. 경쟁이 약해지면 그만큼 질이 떨어진다. 쓸만한 지하자원 하나 묻혀 있지 않은 좁은 땅덩어리 국가를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이끈 요인 중 가장 큰 게 교육열이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는다.

 

  문제는 너무 많은 수가 평생 써먹지도 못할 전공공부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된장녀의 하루>에서 보듯 전공수업 시간에 졸거나 문자질이나 하는 학생들 수를 무시 못한다는 것이다. 그 시간과 돈, 아깝지 않은가?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세상을 다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 알게 된다고 해서 세상을 어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이다. 인문학은 "Know myself"의 길을 알려주는, 인간은 어떤 존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을 통해 우리는 끝없이 변하는 상황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어떻게 더불어 아름답게 살 수 있는가 해법을 도출해낼 수 있다. 인문학의 토대가 없으면 트렌드에 휩쓸리고 쉽게 물신주의에 빠지게 된다. 인문학은 고급한 반성적 사유의 토대를 마련해준다.

 

  이 졸부들의 나라 대한민국의 인문학은 아사직전이다. 지난 개발독재 체제에서 우리의 인문학은 교육제도 차원에서부터 홀대받아 왔다. IMF 사태 이후의 실용학문 중시 경향은 인문학을 확인사살하고 있다. 실제로 모든 대학에서 인문학 분야는 통폐합되거나 축소되고, 교양 인문학은 필수에서 선택으로 전환되는 추세에 있으며, 지원학생이 없어 학과가 폐지되는 사태를 맞기도 했다.

  오늘날 대학은 전문가 양성소일 뿐이다. 그러나 전문가는 전체를 볼 능력이 없다. 사회가 어디로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인문학은 개인을 떠나 전체를 볼 줄 아는 지식인을 길러준다. 인문학의 부재는 유토피아를 한순간 디스토피아로 전락시킬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반성적 사유가 불가능한 빠른 변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댄스음악의 리듬은 점점 더 빨라지고, 계속 업그레이드 되는 컴퓨터를 다루지 못하면 자신의 분야에서 낙오자가 되기도 한다. TV, 인터넷, 휴대폰은 우리를 더욱 책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다. 하루는 24시간 절대적인 시간이다. 그 절대적인 24시간의 상당부분을 TV와 인터넷, 휴대폰에 할애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무조건 1∼2시간 인터넷을 해야 하고 1∼2시간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고 게임을 해야 하고, TV 인기드라마도 봐야 한다. 하루는 24시간밖에 없는데, 최소한 2∼3시간은 '무조건' 빼앗겨버린 것이다. 하루가 28시간으로 늘어나지 않는 이상 책을 보는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 읽지만 미래에는 머리가 안 돌아가서 못 읽게 되는 사태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이미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위에서 밝혔다시피 책을 펼치면 30초도 못 견디는 아이들이 이미 수두룩한 것이다.
  그래서 이제 인문학은 용도 폐기된 학문인가? 모든 것을 과거의 영광으로 돌리고 이대로 사라지는 수밖에 없는 것인가?
  그럴 수도 없고, 사실 그러하지도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위기의 시대일수록 주저앉았다가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것은 정신문화밖에 없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새 천년을 이끌어갈 젊은 세대 가운데 르네상스적 지식인(폭넓은 지식과 교양의 소유자)을 꿈꾸는 야심에 찬 젊은이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빠른 시대일수록 변하지 않는 정신적 중심이 되는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긴 있는 것이다.


  사실 인문학적 소양이 없는 사람은 우리시대 최고의 예술장르라고 하는 영화도 만들 수 없고, 만화도 그릴 수 없다. 모든 문화의 뿌리는 인문학인 것이다. 세상과 인간을 알기에 아직은 인문학만큼 좋은 방법이 없다. 문제는 교육제도다. 교육계 종사자들, 이제는 제발 자기 자식밖에 모르는 학부모들 등쌀에 휘둘려 땜질식 처방만 내리지 말고 '뿌리깊은 나무' 같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워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란다.

 

된장녀잡기

 

출처 : 타라의눈물
글쓴이 : 자객-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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